‘불후의 명곡’에 오랜만에 패티김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3일 토요일 밤 방송된 ‘불후의 명곡’ 583회는 ‘The One & Only 아티스트 패티김’ 특집 2부입니다.
이번 ‘더 원앤온리 아티스트 패티김’ 특집에는 지난주 경합을 벌였던 빅맘 박민혜, 박기영, 첫사랑, 김기태, 조명섭에 이어 옥주현, 스테파니&왁시, 황치열, 소제이, 악스, 포레스텔라, DKZ, 이병찬, Xdinary Heroes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10년 만에 무대에 선 패티김의 전설 같은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공개된 2부에서는 패티김이 자신의 이혼 스토리를 거침없이 풀어내며 모두의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패티김은 전 남편이자 작곡가였던 고 길옥윤과의 이혼을 언급하며 “우리가 이혼을 하는데 어쨌든 신경 쓰이는 사람들을 다 부르자고 했다”며 “너무 멋지게 이혼했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어 故 길옥윤이 작사-작곡한 자신의 곡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탄생 배경에 대해 전하며 “2-3일씩 없어지고 노래 한 곡 보낸다고 금방 화해할 수 있을까?”라고 말해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재미있는 부부생활이었다”고 돌아봐 눈길을 끌었다.

이어 故 길옥윤이 작사-작곡한 자신의 곡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탄생 배경에 대해 전하며 “2-3일씩 없어지고 노래 한 곡 보낸다고 금방 화해할 수 있을까?”라고 말해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재미있는 부부생활이었다”고 돌아봐 눈길을 끌었다.
이를 들은 MC 신동엽은 “남편이 2~3일 잠적했는데 노래 하나 만들어주면 용서 못할 것 같은 분은 버튼을 눌러주세요!”라고 명곡 판정단을 향해 심술궂은 주제를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 패티김을 축하하기 위해 ‘국민가수’로 불리는 뛰어난 가창력의 후배 가수 이선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선희는 패티김을 향해 “선배님!”이라고 외치며 품에 안겼습니다.
이선희는 선배님 여전히 멋있어요. 정말이라며 패티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스튜디오에 있던 출연자들은 이선희의 등장에 놀라 기립했습니다. 제작진조차 몰랐던 깜짝 출연에 패티김은 “또 누구 없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패티김은 이선희를 보고 “한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칭찬했습니다.

신동엽은 “사실 몰래 온 손님으로 올 정도로 둘의 인연이 특별하다고 들었다”고 운을 뗐다. 이에 대해 이성희는 1984년 데뷔한 이후 줄곧 존경해 왔다. 제가 가수로서 선배님들과 무대에 서는 자리가 많았는데, 가장 많이 무대를 함께한 선배님이다. 패티김이 “선희야, 내 무대에 함께”라고 하면 언제든 갔다. 나의 롤모델이었다고 존경심을 전했습니다.’The One & Only 아티스트 패티김’ 특집에서 패티김은 자신의 히트곡을 직접 부르며 10년 만에 패티김 무대를 만난 520여 명의 관객을 깊은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패티김-길옥윤▼’The One & Only 아티스트 패티김’ 특집에서 패티김은 자신의 히트곡을 직접 부르며 10년 만에 패티김 무대를 만난 520여 명의 관객을 깊은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패티김-길옥윤▼이날 가수 패티김이 근황을 전하면서 그의 나이와 자녀 등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습니다. 가수 패티김은 올해 85살이고 본명은 김혜자입니다. 당시 마침 20대부터 미국 8군 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 패티김은 다양한 노래를 발표했고 리즈 시절 한국 여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공연과 한국 사수 첫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등을 열기도 했습니다.패티김은 리즈 시절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디바로 한국 현대 대중가요사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스탠다드 팝의 선구자 이미자, 현미, 윤복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이자 디너쇼 여왕이었습니다.첫 남편이었던 고 길옥윤은 1966년 같은 무대에 자주 서서 친해졌습니다. 당시 고 길옥윤은 지난 4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패티김에게 청혼송을 전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패티김은 “3월 말쯤 됐는데 고 길옥윤이 ‘4월이 지나면’이라는 노래를 작사해줬다. 가만히 들어보니 프로포즈 같았다”고 말했습니다.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다는 고 길옥윤은 가사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 전했고, 두 사람은 그해 12월 결혼했습니다. 패티김과 고 길옥윤은 신혼여행 대신 베트남으로 위문공연을 갈 정도로 부부이자 음악동지였다고 합니다.두 사람은 가수와 작곡가로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고,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사랑이라는 두 글자’ 등이 두 사람의 신혼 때 탄생한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패티김과 고 길옥윤은 결혼 5년 만에 결국 이혼 절차를 밟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히트곡 ‘이별’을 발표한 지 1년 만이었습니다.패티김은 1992년 한 방송에서 “우리가 이혼해도 우리 음악생활은 계속하자고 했다. 5년간 발표한 곡이 너무 많아서 너무 큰 작품이 많았고 음악적으로는 정말 훌륭한 팀이었지만 부부생활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고 이혼 심경을 밝혔습니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어요.패티김은 과거 한 방송에서 출연해 “모두가 나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서로 너무 몰랐던 게 결혼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길 선생님은 365일 술을 마시며 도박까지 했다.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패티김은 이혼 20년 이후 고 길옥윤이 개최한 콘서트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패티김은 암 투병 중이던 길옥윤에게 “왜 아프냐”며 “아프지 말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패티김의 따뜻한 메시지에 고 길옥윤은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찬 시간을 함께 보냈다”며 “몸이 멀어졌을 뿐 마음은 영원한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패티김 재혼-자녀▼결국 5년 만에 이혼을 결정한 패티김은 4년 뒤 이탈리아인과 재혼했고 패티김의 외도로 이혼한 것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패티 김은 남편 아르망드 게디니와 1976년 재혼해 놓았을 때 딸 카밀라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길옥윤 사이에서 태어난 딸 최정아와 둘째 딸 카밀라 데디니와 함께 슬하에 두 딸을 뒀다고 합니다.최정아와 카밀라는 아버지가 다른 이부자매지만 우애가 남달랐고, 최정아는 새아버지 아르망에게도 진심 어린 효도를 다했다고 합니다. 두 자매 모두 부모님께 효도를 했다고 합니다.▼ 패티김 혼혈녀 카밀라▼한편 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는 이탈리아 아버지와 어머니 패티 김을 쏙 빼닮은 하프에서 태어났는데, 빼어난 미모에 키 171cm로 모델을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밀라는 미국 명문대 UCLA를 졸업했는데 패티김의 재능을 이어받아 2003년 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굿바이’, ‘도대체’라는 서정적인 곡으로 사랑받았습니다. 당시 가수 패티김의 딸이라는 게 화제가 됐고 데뷔 전부터 팬클럽 등이 결성되는 등 반응이 좋았습니다.또 음악계의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그녀의 음악 활동에 대거 참여했는데, 카밀라는 한국 연예계 시스템과 음악 지향점이 맞지 않는 등 한국에서의 음악 활동을 괴롭히다가 결국 1집 이후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웨딩플래너로 이직한 뒤 그곳에서 결혼해 아이도 낳고 가족끼리 살고 있다고 합니다.앞서 과거 방송에서 패티김은 앨범을 낸 이력이 있는 딸 카밀라에 대해 “딸로서가 아니라 내가 볼 때도 노래를 정말 잘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지만 결혼과 동시에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며 “사실 카밀라가 현재 임신 7개월차여서 4월에는 셋째 손자를 보게 된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제가 54년간 가장 행복했던 때가 첫째 정아와 둘째 딸 카밀라를 낳았을 때”라며 딸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패티김은 은퇴 후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 계획은 세우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은퇴 후에는 평범한 김혜자 할머니로 돌아가 나비처럼 살고 싶다”며 “할머니로서 딸들과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상 대한민국 영원한 디바 패티김의 소원처럼 이제는 다정하게 큰딸 둘째딸로 할머니로 살고 있는 그의 근황과 인생 여정의 발자취를 되새겨봤습니다.패티김은 은퇴 후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 계획은 세우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은퇴 후에는 평범한 김혜자 할머니로 돌아가 나비처럼 살고 싶다”며 “할머니로서 딸들과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상 대한민국 영원한 디바 패티김의 소원처럼 이제는 다정하게 큰딸 둘째딸로 할머니로 살고 있는 그의 근황과 인생 여정의 발자취를 되새겨봤습니다.